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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 No. 1114  Posted by 최동욱, on 105/11/09,03:45:14
80일간의 세계일주 (7) 스위스 제네바 & (8) 미 프린스턴

80일간의 세계일주 (7) – 스위스 제네바

10월 8일 (토) - 레만호에는 거대한 물줄기의 분수가 솟구친다

어제 저녁 5시 30분 비행기로 ‘프랑크프르트’를 거쳐, 스위스의 ‘제네바’로 왔다. 제네바 한인교회의 정목사님이 마중 나와 계셨다. 시간은 어느덧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우리의 짐이 나오지를 않는다 . ‘프랑크프르트’에서의 연결시간이 45분밖에 없었는데 게다가 비행기가 20분을 연착하는 바람에 탑승시간을 넘겨 우리는 막 뛰어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tram까지 타고 다른 구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 겨우겨우 탑승을 했는데 아마도 짐은 옮겨 실지 못한 모양이다. 오늘 아침 다시 오기로 하고 그냥 숙소로 향했던 것이다.

아침에 목사님이 차를 몰고 일찍 오셔서 어제 못찾은 짐을 찾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벨트에 돌고 있는 우리 짐을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짐을 찾아 숙소에 두고 차를 타고 제네바 드라이브에 나섰다. 스위스에는 ‘레만 호수’가 있는데 그 길이가 80 km에 폭은 넓은 곳이 30 km 란다. 한쪽 끝에 ‘제네바’가 있고, 다른쪽 끝에는 휴양도시인 ‘몽뜨르’가 있으며, ‘레만호’의 삼분의 일은 불란서령이란다. 제네바에서 레만호수를 끼고 1시간을 달려 몽뜨르에 도착하여 이곳의 옛성인 ‘시옹성’을 들어가 견학하였다. 14세기 레만호 절벽위에 세워진 거대한 성채로 통행세를 받아내기 위한 요충지대에 있으며 그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해 역대 성주들이 수없이 바뀐 곳이라 하는데, 그들의 문장들이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점심을 호수가 식당에서 했는데, 이곳 물가가 워낙 비싸 간단한 점심인데도 셋이서 우리돈 6만원을 냈다. 북구의 물가보다도 더 비싼 것 같다. 그런데 보니 물값이 콜라나 레몬티보다 더 비싸게 받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유명한 생수인 ‘에비앙’이 요 근처에서 나는데도 말이다.

오는 길에 호수 중간지점에 ‘로잔’이 있고 그곳 ‘올림픽 박물관’이 볼만하다 하여 갔더니 오늘은 못들어 가게 막아 놓아 그냥 지나쳐 다시 제네바로 돌아왔다. 목사님은 내일 설교 준비를 위해 들어 가시고 , 우리 둘이서 레만호수의 크루즈배를 한시간을 탓다. 제네바 레만호의 상징인 ‘분수’가 높게 뿜어 올라 가는게 장관이었다. 높이가 130 m나 된다는데, 우리도 이것을 본따 상암월드컵 운동장앞 한강에 분수를 놓았다 한다.

제네바에도 예외없이 있는 ‘셍 피에르 대성당’을 구경하고, 시내를 걸어다니며 가게들을 구경했는데 값이 비싼 것을 금방 알겠다. 이윽고 밤이 되어 분수가 그 위용을 자랑하는데, 밤에 보니 마치 폭포수가 하늘에서 내리 쏟아 지는 것 같이 보여 낮에 보는 분수와는 사뭇 다른 기분을 느끼게 했다.

10월 9일 (일) - 대사관저에서 만찬을 즐기다

오늘은 주일날이라 교회에 가는 날이다. 오랜만에 정장으로 차려 입고 ‘제네바 한인교회’로 갔다. 전에 이재철목사님이 오셔서 3년간 목회를 하고 그 후임으로 정목사님이 오신게 벌써 4년이 돼 간단다. 오랜만에 정식으로 예배를 보니 마음이 개운하고, 찬양대의 성가와 목사님의 설교에 모처럼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

예배가 끝난후 친교시간에 점심을 먹고 있는데, 아내에게 다가와 반갑게 인사하는 분이 계셔 의아하게 생각하였는데 바로 이화여고 동창생이란다. 이곳의 대사 부인으로 오랜만의 해후로 반가워들하는데, 우리를 오늘 저녁 대사관저로 초대하여 식사대접을 하겠다 하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오후에는 목사님의 안내로 ‘종교 개혁 기념비’를 구경했는데, 이곳 제네바는 ‘죤 칼벵’의 주도로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나 신교가 탄생한 유서깊은 곳이라 한다. 또 ‘셍 피에르 성당’으로 가는 길의 ‘무기고’앞에는 유명한 ‘뽕듀’집이 있는데, 1995년 ‘빌 린턴’대통령이 와서 그 맛을 보고 감사장을 보낸것이 동판으로 해서 붙어 있었다. 대성당 내부는 신교의 교회답게 종래에 보았던 화려한 장식이나 압도하는 분위기가 아닌 검소한 내부로 되어 있어 한결 친근감을 주고 있었다. 입장료를 내고 탑의 종루로 힘들여 걸어 올라가니 제네바시내가 사방으로 시원하게 보인다.

7시에 대사관저를 방문했다. 대사부인의 친절한 배려로 레만호가 내려다 보이는 저택에서 시중을 받아가며 정식 만찬을 들었다. 마침 최대사는 출장중이라 만나지 못해 서운했지만 훌륭한 식사대접과 환담으로 오랜만에 피로를 말끔히 풀 수 있었다. 이제 오늘로서 제네바여행도 끝이다. 내일이면 미국으로 들어가, 보고 싶던 딸내외와 특히 새로 태여난 내새끼 ‘진아’를 첫 대면할 수 있다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단잠을 청했다.


80일간의 세계일주 (8) – 미 프린스턴

10월 10일 (월) - 더없이 예쁜 손녀와 첫대면하다

아침 8시에 제네바를 출발하여 중간에 ‘프랑크프르트’를 거쳐 드디어 미국 땅에 오후 4시 (시계를 6시간 뒤로 돌려서) 도착하였다. 프린스턴에서 좀더 가까운 ‘뉴왁’공항을 처음 이용해 보았다. 그런대 큰 오산을 하였던 것이다. 미국 입국허가를 받기 위하여 길게 줄이 서져 있는 가운데 오래 기다리다 마침 옆사람의 호의로 ‘셀폰’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그만 경관의 제지를 받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게 괘씸죄에 해당돼 이민국사무실로 넘겨져 정밀검사를 어이없이 받게 되었다. 1시간을 줄창 기다리다 아무 코멘트없이 도장을 받고 나왔지만 불쾌하기 그지없다.

불쾌감을 짖누르고 마중나온 사위의 차를 타고 ‘프린스턴’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첫대면을 새로 태여난 외손녀와 했는데,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 쳐다보고 또 쳐다보아도 신기하고 가슴이 벅차 오른다. 어떻게 이렇게 모든 몸체를 엄마 뱃속에서 갖추고 이 세상에 나왔는지? 우리 아이들 때보다 더 이쁘고 더 사랑스러우니 자기 자식보다 손주가 더 하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정아도 건강해서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걸어 다니며 일을 한다. 모든게 고맙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여기는 요사이 계속 비가 내린다 하니 그 동안의 오랜 여행으로 피곤하기도 하지만 밖에 나갈 일이 없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오늘부터 닷새를 내리 집안에서 ‘진아’를 보면서, 그동안 못했던 ‘여행기’쓰기와 ‘웹’에 올리는 작업을 하였다.

10월 15일 (토) - 플러싱 부흥회에 다녀 오다

모처럼 날이 화창하게 개었다. 정아가 오랜만에 외식을 하고 싶다하여 근처 중국 부페식당으로 갔는데, 정아는 삽시간에 세그릇을 비우고 후식과 아이스크림까지 챙겨 먹는다. 산모가 잘 먹으니 마음이 흡족하다.

밤에 2시간 걸려 사둔 내외랑 뉴욕 플러싱으로 올라가 한국에서 오신 이재철목사님의 부흥회에 참석하였다. 이국땅에서 반가운 분을 이렇게 만나니 가슴이 찡하고 좋다. 많은 성도들로 부터 환호를 받으시니 역시 설교말씀이 깔끔하고 감동적이다. 아무에게도 얘기 하지않고 참석하였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옛직장후배 두사람 내외를 만났다. 모두들 반가와 하는데 이렇듯 어디가든 아는 분들을 만나게 되니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약속을 하고 만나기로 해도 어긋나는 세상에 말이다.

10월 18일 (화) - 아내의 쇼핑 길에 따라 나서다

오늘은 아내가 쇼핑하기로 선포했던 바로 그 날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럴때는 아무소리없이 따라 나서 줘야 한다. 여자들은 여행중에도 여행외에도 쇼핑을 어느정도 해야 만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제수씨의 안내로 뉴욕의 유명한 아웃렛인 ‘우드베리’로 갔다. 평일임에도 주차장에는 차가 그득하여 주차할 곳을 찾기가 쉽지않다. 아내가 유명브랜드 상점에서 쇼핑하는 동안 나는 밖의 벤치에 앉아 있다가 또 이동하면 따라서 벤치를 옮겨 앉곤 했다. 드디어 4시간에 걸친 쇼핑은 끝이 났고 나는 코끝이 맹맹해 졌다. 찬바람에 감기 기운인가 아니면 카드결제 걱정때문인가 나도 모르겠다. 끝난후 우리가 미국에 오면 자기 안방을 내주기까지 하며 환대하는 사촌동생집에 가서 훌륭한 저녁대접을 받았다.

10월 20일 (목) – 나이듬의 서글픔을 확인하는 현장

우쭐대다가도 어느때엔 뒷통수를 맞는듯 자기비애를 느낄때가 나이든 요즈음 부쩍 많아진 것같다. 오늘 아기를 데리고 프린스턴병원에 가서 수유와 관련된 상담을 의사 로부터 받는 날이란다. 그 병원이 바로 정아가 아이를 낳은 병원이란다. 시설이 너무 훌륭해, 산모는 입원한 넓은 방에 그대로 있으면서 방으로 의사가 와서 아이를 받아 낸고 산후에도 그 방에 머물면서 산후조리를 한다하니 산모위주로 된 병원이라 참으로 부럽다.

병원 카페에 혼자 앉아 심심하기도하여 ‘디카’를 꺼내, 앞으로의 사진찍기를 위해 빈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작업을 했다. 이미 저장한 이미지를 삭제해 나가기 시작해서 500장 모두를 지워버렸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 마지막 100여장을 저장못했다는 정아의 말이 그제 생각이 났으나 이미 게임은 끝난 다음이었다. 스페인 후반부터 제네바까지가 그토록 아껴가며 찍은 사진들이 한순간에 날아 가 버렸으니 그 원통함과 자괴감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컴퓨터전문가인 딸과 사위에게 복구가 가능한지를 물어 보았더니, 여기저기 탐색을 하더니 드디어 ‘삭제된 이미지 복구하기’ 프로그램을 찾아내어 돈을 지불하고 복구에 성공하였다. 하루종일 이것과 씨름했더니 머리가 아프다. 그래도 다시 살렸으니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10월 21일 (금) - 맨하탄 가이드를 하다

맨하탄에 나가 ‘아시아나 항공’에서 앞으로의 비행스케줄을 전면 재조정하고 티켓팅을 새로 했다. 10월 27일 이곳을 출발하여, 카나다와 미국서부 그리고 하와이를 거쳐 11월 29일 한국 도착으로 확정지었다.

한국에서 가까이 지내던 엄목사님과 신교수님을 만나, 맨하탄 구경 (42번가, 타임스퀘어, 록펠러쎈타, 센트럴파크, 링컨쎈타) 을 시켜 드리면서 내가 직접 운전하고 가이드역할을 하니, 이제 미국와서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특히 록펠러쎈타에는 얼음이 벌써 얼려져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고, 센트럴파크의 호수에도 순백의 얼음이 얼려져 꼬마스케이터들의 모습이 앙증맞게 보였다.

교환교수로 와 계시는 신교수님은 전공이 무용발레다. 매년 ‘메시아’를 공연하고 계신데, 여기 링컨쎈타에서의 공연을 추진중이라 하며 관심을 보이셨다. 부디 꼭 이루어져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랬다. 밤늦게 프린스턴 딸네집에 모시고 와서 내일 진아의 삼칠일 모임때 예배 인도를 부탁드렸는데, 이 얼마나 축복스런 일인가?

10월 26일 (수) - 어머니 감사합니다

아기가 아침부터 울어댄다. 말을 못하니 의시 표현을 그걸로 하는 모양이다. 쪼그마한 아기를 한참 들여다 보다, 그만 내 생각과 어머니 생각이 같이 들어 코끝이 찡해졌다. 팔일오 해방후 나도 저렇게 쪼그맸을때 (아마 생후 1개월이나 2개월) 우리 어머니가 등에 업고 누나는 걸려서 23살 어린(?) 나이의 혼자 몸으로 북만주 할빈에서 삼팔선을 넘어 남으로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걸어서 나왔다하니 내가 살아 내려온게 기적같은 생각이 들었고 어머니의 고초가 새삼 느껴져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오래 오래사세요.

내일이면 정든 아기와 딸을 떠나, 후반부 여행을 다시 계속할 예정이다. 모쪼록 건강하고 이쁘게 커 가기를 빌며, 언제 다시 볼려나 가슴이 팍팍하다.






[] - 명성산 산행 안내
[] - 2005년 추계 서울시 고교 야구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