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세계일주 (4) – 터키
9월 4일 (일) - 유럽과 아시아의 관문 이스탄불
두바이는 새벽별 보기다. 오늘 떠나는 날인데 또 새벽 3시 50분 비행기다. 어제 밤 공항에 나와 6시간을 의자에 앉아 자다가 눈을 비비며 겨우 비행기를 타고 또 내리 잤다. 그러다 깨니 아침 7시 30분 터키의 이스탄불이란다 (시계를 1시간 뒤로 돌림) 그동안 깨끗한 도시들과는 달리 터키는 우리의 60년대와 같이 무질서하게 보였다. 이른 아침에 털털거리는 택시를 타고 지정된 호텔로 갔다.
근래에 들어와 우리나라에서는 터키여행이 붐을 이루고 있다. 성지순례로 처음 시작되더니 이제는 일반관광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우리도 세번째 여행지로 터키 일주로 정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여행사를 따라 다닐까 하다가,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1989년 유럽여행시 우리가 이용했던 영국여행사 패키지가 생각이 났고, 인터넷을 뒤져 터키일주 패캐지를 예약하게 된 것이다. 분위기가 이국적이고(우리 외에는 모든 사람들이 외국인이고) 호텔 식사 버스가 수준급이며 가격도 13일에 800불로 저렴한데다가 강제 쇼핑도 하지 않는다. 그 단체 버스여행의 시발점이 이스탄불의 에르보이 호텔이다.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궁금했던 이스탄불 구경을 나갔다. 우리가 묵고 있는 곳이 유럽쪽 구시가지고, 금각만 건너에는 유럽쪽 신시가지가 있고, 보스포러스해협을 건너 저편은 아시아쪽 이스탄불이다. 서기 330년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로 시작하여 1923녕 터키가 독립할때까지 이 나라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 있는 동서문화의 충돌지대이다.
호텔을 나오니 바로 앞이 왕궁공원이다. 바로 이 부근에 주요 볼거리가 다 모여 있다하니 걸어서 보면 될 것 같았다. 우선 사람들의 왕래가 많고 주말이라 벤치에는 젊은 연인들이 데이트를 즐기는 넓은 공원을 지나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 노천카페로 들어갔다. 이곳 터키인들이 즐겨 마신다는 터키차인 "짜이"를 시켰더니 우리돈 6천원을 달란다. 좋은 전망이라 그러려니 했더니 나중에 알고보니 엄청 바가지였다. 보통 400원에 좋은데는 600원 받는 것을 우리는 첫 신고를 톡톡히 한 셈이다.
"톱카피 궁전"을 들어 갔다. 15세기에 오스만왕조에 의해 세워져 그후 400년간 왕궁으로서 사용됐던 거대한 건축물로서, 여기에는 아라비아 문양의 벽면과 타일 그리고 세밀한 공예가 눈길을 끌었고, 특히 회교의 창시자인 무하마드의 유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86캐럿의 대형 다이야몬드가 있는 보물실과 금남의 방으로 왕의 내실인 하렘도 볼만하다고 했으나, 오늘 표가 마감되었다하여 아쉽게 보지는 못했다.
톱카피궁전을 나와, 그 옆의 아야소피아성당을 지나 블루모스크 쪽으로 향해가니 넓은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관광객과 더불어 떠들석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터키음악에 맞춰 왈츠와 비슷한 터키춤을 추고 있었고 곳곳에는 연인들의 아베크 모습이 눈에 뛰었다. 분수를 등지고 블루모스크를 가는데 색갈도 선명한 무지개가 나타나는게 아닌가. 청명한 날씨에 선명한 무지개라. 무슨 길조냐 싶어 기분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이곳 터키의 물가는 우리의 절반 수준인데 비해 왕궁 입장료는 비싼 편이었다. 1인당 12,000,000 리라니 둘이서 2천 4백만 리라를 주고 들어 가는 셈이다. 과거 몇십년간 매년 인프레가 30%씩 이였다니 그럴만도 하겠다. 끝자리 0을 3개 떼어놓고 12,000원이라 생각하면 쉽고 또 요새는 원화 강세라 0.8을 곱해 입장료가 9,800원인 셈이다. 터키 정부가 올 1월부터 백만분지 일로 화폐개혁을 단행하여 병행해 쓰고 있는 YTL (새 터키 리라) 로는 12 YTL 이 되는 것이다.
호텔로 돌아와 방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외국손님들과 기다리는데 오랫동안 기다렸는데도 영 "문"이 열리지 않는다. 나중에 온 손님이 에레베이터 문을 잡아 당기니 열린다. 벌써부터 와 있었던 것을 문을 열지 않았던 것이다. 또 한번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가는데 내릴때가 됐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기다렸더니 이번에는 불까지 꺼져 버린다. 당황하여 여기 저기 눌러보다 문을 미니까 그제서야 열린다. 엘리베이터에 열고 닫는 문이 따로 있을 줄이야
..
9월 5일 (월) - 마르마라해를 건너 아시아 땅으로
아침 6시 30분에 wake-up call 을 받고 짐을 방밖에 내놓고 7시에 아침부페를 먹으러 내려가고 8시에 버스에 탑승하여 출발한다. 이곳 이스탄불은 돌아 오는 길에 2박하기로 예정돼 있으니 그때에 와서 찬찬히 보면 될 것이고 일단 터키일주여행을 시작한단다.
터키는 전국토의 95%가 아시아쪽에 있고, 5%만이 유럽쪽이란다. 출근시간으로 복잡한 이스탄불 시내를 빠져 나와, 갈리폴리반도를 향하여 서쪽으로 향한다. 마르마라해 해안을 따라 4시간여를 달리니 반도의 끝이다. 세계제1차대전시 영불연합군과 터키군(이때 터키는 독일과 한편이었다가 패전국이 되어 곤욕을 치뤘다 함) 이 격전을 벌였던 장소에 전장기념비가 군데 군데 세워져 있었다.
페리를 타고 다다넬스해협을 건너 가면 아시아 땅인 "차낙칼레"다. Resort hotel 인 Tusan 에 여장을 풀다. 터키는 면적이 한반도의 4배 가량이고 인구는 7천만명이다. 오랜 세월동안 타국의 지배를 받아 왔는데, 기원전 700년경의 페르시아로부터, 기원전 300년의 마케도니아, 그 후의 로마 지배는 기원후 1100 년까지 700년을 받다가, 잠시 셀주크 왕조가 섰다가, 다시 징기스칸의 침략을 받아 오스만 터키 시대가 근 800년간, 그후 1923년 국부 "무스타파 케말 “의 주도하에 독립국이 되었다 한다. 이곳의 유적지 대부분이 로마 시대의 것이고 그후의 이스람문화가 오늘날의 주요한 관광자원이 되었다 하니 참 아이로니칼하기도 하다.
9월 6일 (화) - 트로이 유적지와 에게해 휴양지가 섞여 있는 곳
차낙칼레를 출발하여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나오는 도시 "트로이"로 갔다. 유적지 입구에는 관광용으로 만들어 놓은 "트로이 목마"가 세워져 있었다. 이 유적지에는 차례로 명멸해 간 9개의 도시 성벽이 겹겹으로 남아 있다. 기원전 3500년의 제1도시로 부터, 그리스와의 10년 전쟁이 있었던 기원전 1200년경의 제2도시, 그 후의 여러 도시를 거쳐 로마시대의 제9도시 까지. 여기 저기 폐허가 된 터와 돌무더기가 산재해 있는 것이 마치 황성 옛터와 같은 황량한 느낌을 준다. 독일인 "슐라이만"의 집념어린 수색작업으로 1871년에 발견된 유적지가 바로 "트로이"다.
트로이를 지나 "베르가마"로 갔다. 이곳에는 기원전 300년에 건설된 베르가몬 왕국의 도시로, 높은 언덕위에는 아드리우스 신전, 아데네 신전, 거대한 원형극장, 그리고 장서 20만권을 자랑했던 도서관등 아크로폴리스의 위용을 자랑하는 유적들이 즐비했다. 그 당시 쌍벽을 이뤘던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이 종이 수출을 금지하며 견제를 하자 양가죽을 대신 사용했다 하여 그 어원이 "베르가몬"이 되었다 한다. 또한 지나는 길에 본 고대의 종합병원인 "아스클레피온" 은 그 당시의 의술이 얼마나 발달하였는지를 가름해 볼 수 있는 유적지였다.
터키 제3의 도시이며 에게해의 중요 도시인 "이즈미르"에 들려 시내 구경을 잠시 하고, 휴양 도시인 "쿠사다시"로 갔다. 터키의 서해안 에게해 연안은 밝은 태양에 청명한 날씨로 유럽에서 손꼽히는 휴양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일년내내 유럽의 관광객들로 붐빈다 한다. 그 중의 하나가 오늘 우리가 묵는 "쿠사다시"이다. 안내된 별 4개짜리 호텔은 바로 앞에 비치가 보이는 전망이 끝내 주는 호텔이다. 멀리 항구에는 초대형 크루즈 선이 떠 있고, 불 밝힌 해안가 거리는 화사하기까지 하다.
9월 7일 (수) - 우리 부부만의 에베소 자유 여행
옵션으로 단체로 에베소에 가는 날이다. 우리는 옵션 가격도 비쌀뿐더러 자유로운 여행 기분이 나지 않아, 현지 버스를 타고 우리만의 여행을 한번 가 보자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처음부터 미니 버스를 타는 데를 몰라 몇번이나 지나 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는데, 어찌니 터키인들이 친절히 가르쳐 주는지 참으로 고마웠다. 우리의 60년대 합승택시와 비슷한 "돌무쉬"는 저렴한 가격에 털털거리며 가는게 그옛날을 생각나게 했다. 에베소 정류소에 내리니 택시 호객꾼들이 에베소 입구까지 데려다 준다며 달려 드는데, 우리는 같이 온 외국인들과 함께 유적지까지 걸어 가기로 했다. 섭씨 35도를 오르 내리는 더운 날씨에 고생은 좀 되었지만 운동삼아 걷기로 한 것이다.
에베소는 성경에 나오는 주요 지역으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곳이다. 로마 식민지 시절에 세워진 대규모 시가지로 U 자 모양의 경기장과 대극장, 그리고 유명한 케르세스 도서관 (그 옆에 두란노 서원이 있음) 과 공중 목욕탕과 공회당, 그리고 그당시 상점들과 주택지등 너무나 많은 유적들이 반은 복원된 채 또 나머지는 길에 버려져 방치된 채 천지에 널려 있었다.
더운 날씨에 어떤 이는 아예 수영복 차림으로 다니고 있었고, 전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인파가 넘실댄다. 그 중에서는 한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성모 마리아의 집"은 여기서도 7키로나 택시를 타고 들어 간다기에 무덥고 힘도 들어 가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오늘 총 6키로를 걸어 오랜만에 운동을 한 것 같았다. 다시 걸어 나와 정류소에서 돌무쉬를 타고 무사히 쿠사다시로 돌아 왔다.
오늘은 오랜만에 많은 걸음을 하여 몸이 몹시 나른하였지만, 이런 멋진 휴양지에 와서 그냥 지낼 수는 없는게 아닌가?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호텔앞 비치에 나가 놀다가, 어두워지자 모래사장 벤치에 누워 파도소리를 들으며 에게해 휴양지에서의 나른함을 즐겼다.
9월 8일 (목) - 로마시대 유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아프로 디시아스"
에게해가 파로나마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호텔베란다에서 사진 몇장을 찍은 후, 8시에 버스가 출발, 일로일로 내륙지방으로 동진하였다. 터키에서 가장 비옥하고 드넓은 평야를 통과하여 2시간만에 로마의 유적지로 유명한 "아프로 디시아스"에 도착했다.
어제까지의 여정에 있었던, "트로이"나 "베르가마" 그리고"에베소"에 비해 덜 알려진 곳인데, 로마시대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라 하여 흥미를 더 하였다. 입구에 들어 가자마자 펼쳐저 있는 "경기장"은 과연 우리를 압도하였다. 서기 1세기에 세워진 그 당시 규모가 제일 커서 올림픽경기를 치뤘다는 길이 260미터, 너비 60미터의 대형 운동장으로서, 주위의 스탠드 수용인원이 무려 3만명이나 된다 한다. 경기장과 계단 모양의 대리석 스탠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 밖에 거대한 아프로디데 신전의 유적과 그 당시 회의장으로 썼던 오데온이 거의 원 상태로 남아 있었고, 1만명 수용의 원형극장도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아 여태까지 보아 온 어느 유적지보다도 볼만하였다.
다시 버스를 타고 "데니즐리"를 거쳐, "파묵칼레"로 갔다. "면화 성"이라는 뜻을 가진 터키에서 손꼽히는 온천 휴양지이다. 석회 성분의 온천 물이 장기간에 걸쳐 결정체로 응고되어 온 산을 뒤덮고 있어, 마치 설산처럼 보이는 석회층의 기묘함에 놀랬고, "앤티크 풀"이라는 온천수 수영장은 풀안에 각종 유물 석재들이 깔려 있어 이채로웠다.
온천 호텔에 투숙하여, "레드 스프링"이라 하는 붉은 색 온천수가 나오는 섭씨 42도의 뜨거운 풀장에서 오랜만에 몸을 녹이고 나니 한결 피로가 가셨다. 밤에는 풀사이드에서 밸리댄스가 있었는데 내가 뽑혀 나가 밸리댄스를 무희의 동작에 맞춰 같이 추니 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아내가 주저없이 내게 "미스터 발리댄서"라는 이름을 붙혀 주었다.
9월 9일 (금) - 석회봉 지대인 파묵칼레 온천수에 발을 담그다
우리가 함께 다니는 영국여행사인 "코스모스 투어" 는 31명이 일행으로서, 도미니카, 폴란드, 호주, 스리랑카, 영국, 미국등 세계 각지에서 모인 구룹이다. 우리만 동양인이다. 가이드의 영어 설명이 완전히는 들리지 않지만 워낙 가이드의 발음이 좋아 대충은 알아 듣겠다.
아침 6시 반에 모닝콜을 하면 짐싸서 방밖에 내 놓고 7시에 우리 둘만의 경건한 시간을 갖는다. 성경교독을 2장씩 하고 아내의 기도로서 하루를 시작한다. 아내의 기도는 집에 두고 온 자식들과 (물론 몽이도 포함하여) 미국의 자식들, 그리고 시댁 식구들 그리고 나의 건강과 또 같이 여행하는 모든 사람들의 안전과 또 이곳 나라를 위해 20 여분간 계속되는데, 아내는 이 시간을 제일 중요시하는 것 같다. 그 후 식당에 내려가 아침부페를 들고, 8시에 버스에 탑승하여 그 날의 투어를 시작한다.
아침 일찍 어제 저녁에 들렸던 석회봉 언덕에 다시 갔다.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석회암 위로 흐르는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걷는다. 종유석처럼 늘어진 석회 고드름과 계단처럼 층으로 된 석회산들이 "솜"처럼 온 산을 뒤덮고 있어, 솜의 성 "파묵칼레" 인가? 아침햇살을 받고 반짝이는 하얀 석회산들이 마치 바닷속 비경같기도하고 태산의 빙하와 같이 보인다.
이곳의 입구에는 히에라폴리스의 유적들이 있다. 기원전 190년 페르가몬왕국때 지어진 것 들로 15,000명 수용의 원형극장은 보존상태가 매우 좋았고 1000여개의 석관이 딩구는 공동묘지터는 터키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또한 도로 양편에 도열된 돌기둥의 잔해는 그 당시의 위용을 짐작케하였다.
오늘은 장시간 버스를 탔다. 파묵칼레를 떠나 중부 내륙을 관통하여 동쪽으로 동쪽으로 진행했다. 중간에서의 점심은 각자의 취향대로 사서 먹는다. 그동안 우리는 케밥으로 간단히 먹곤 했는데, 오늘은 이곳의 백반을 사서 먹어 보았는데 그 값이 평소 먹던것의 3배였는데, 그 맛은 별로 였다. 이곳 터키에서는 화장실에 가면 꼭 돈 받는 사람이 있어 우리돈 400원 정도를 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참기도 하고 공짜 화장실에서 미리 보기도 하고 슬쩍 들어 가기도 하면서 또 아무도 없을 때는 산길에 실례도 해 가면서 아직까지 한번도 돈낸 적이 없었는데, 오늘 한입에 털어서 밥값으로 치뤘다.
넓은 평원과 산악지대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드디어 오후 4시에 옛 셀주크왕국의 수도였던 "콘야"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이곳은 아나톨리아(터키의 아시아쪽)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서 이스람 신비주의인 메비레비교단의 발상지로 참배객들이 많다 한다. 잠시 시내 구경을 나갔었는데, 거리가 너무 지저분하고 사람들도 못 사는것 같아 마음이 아펐다.
9월 10일 (토) - 영화 "스타 워즈"의 촬영장, 카파도시아의 기기묘묘한 자연
오늘은 터키 관광의 하이라이트인 "카파도시아" 지역으로 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콘야를 출발하여 2시간을 가니 아크사라이가 나오고, 도중에 옛 "실크 로드" 길의 약대상들이 묵었던 "캬라반 사라이"에 들렸다. 중국에서 출발하는 약대상들의 하루 걸음걸이인 40키로마다 하나씩 설치된 이곳을 둘러보니 옛 상인들의 고초와 상인정신을 짐작케 하였다.
다시 차를 타고 1시간 정도 들어 가니 이건 그야말로 딴 세상이였다. 수억년전에 분화한 화산재와 용암이 수백미터씩 거듭 쌓인 끝에 풍화와 침식이 거듭 반복되다 보니 기기묘묘한 기암들이 생겨나게 됐고, 그래서 스타워즈의 촬영장이 되기도 했단다. 아니 누군가 눈을 가리고 이곳에 몰래 데려다 놓으면 마치 다른 행성에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자연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먼저 하나의 바위가 성채를 이루고 그 산등성이에 수많은 구멍이 나 있는 "우치 히사르"봉우리를 보았다. 그 구멍들은 비둘기 집으로 뚫어 놓은 것으로 포도재배의 거름으로 비둘기 똥을 모으기 위함이란다. 그 앞의 계곡에는 그랜드 캐년을 연상시키는 "괴뢰메 계곡"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저 있었다. 이 지역 이름도 참으로 괴상한 "괴뢰메"란다.
"괴뢰메 야외 박물관"은 그야말로 또다른 장관이었다. 괴뢰메 계곡으로 30여개가 넘는 "암굴 교회"가 있는데, 커다란 바위의 안을 뚫고 들어 가 예배보는 장소와 기거하는 장소를 만들고 천장과 벽에는 온갖 성화와 프레스코화를 그려 놓은 곳이다. 서기 4세기경에 수도사들이 박해를 피해 동굴을 파고 살기 시작했다 하는데, 어떻게 그 옛날에 무슨 장비가 있어 바위를 뚫었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곳 지방에는 손으로 짜는 "카펫트"가 그 품질면에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유명하다 하여, 공장 견학을 하였는데 여인네들이 일일히 손으로 짜는 것을 보니 감탄스럽기도하고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했다. 한장의 카페트를 짜는데 어떤 것은 2년 아니 4년이 걸린다 하니, 가급적 이런 단순 작업은 기계에 맞기는게 타당할 것이다.
9월 11일 (일) - 지하 동굴도시에서 옛 신앙인의 생활에 옷깃을 여미다
오늘은 주일이다. 교회에 못 가니 둘이 앉아 성경을 읽고 기도로서 예배를 마친다. 아침 일찍 낙타계곡 (camel valley) 으로 갔다. 수많은 바위들이 하나같이 독특했지만, 그 중 닉타와 똑 같은 바위도 있어 이채로웠다. 어디를 보나 기암괴석인데 특히 이 계곡에 있는 수백개의 뾰죽바위들은 마치 백백교도들이 흰옷과 두건을 쓰고 눈만 내놓으 형상으로 도열해 있는 것 같아 몸이 오싹할 정도다.
"파샤바 바위"는 붙어있는 3개의 버섯 바위로 삐죽 솟은 바위위에 마치 송이 버섯이 올라 가 붙어 있는 것 같이 희안했다. 아내 말이 걸작이다. 버섯 모양의 용암이 튀면서 날아 다니다가 바위위에 철썩 붙은게 아니냐구? 그럼 그 버섯 모양의 용암은 버섯이 날아다니다가 바위에 붙었남? "괴뢰메 계곡" 또한 매끈매끈한 바위의 물결을 이루고 있었고, 제르베협곡에 있는 "제르베 야외박물관" 에는 많은 암굴교회와 암굴 주거지가 희안한 모양으로 널려있었으며, 주위 곳곳에는 버섯바위들이 서로 키를 재듯 우뚝 우뚝 서 있었다.
오후에는 지하 암굴도시인 "오즈코낙"을 가 보았다. 암굴주거지로 개미집처럼 지하로 뻗어 내려간 지하도시이다. 박해를 피한 기독교인들이 숨어 신앙생활을 했던 곳으로 이곳에서만도 수십개가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 하는데, 큰 것은 4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이라니 거 참 사람의 힘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었던가. 우리가 간 곳은 지하 19층까지의 미로가 되어 있다지만 개방은 4층까지만 되어 있었다. 쪼그려 자세로 기어 가는 곳도 있었고, 내부에는 환기통, 저장고, 예배장소, 숙소, 주방등이 칸칸이 있었고 유사시 굴입구를 막는 커다란 굴림바위는 어떻게 그걸 굴로 들여 났는지 불가사의중의 하나였다.
9월 12일 (월) - 현지인들속에서 느끼는 여행의 참 맛
기묘한 자연경관의 보고인 카파도시아를 떠나 이 나라의 수도인 앙카라로 가는 날이다. 3시간여를 달리니, 이곳 제2의 호수인 "투즈 호수"에 도착하였다. 이 호수는 소금호수로 유명한데, 거의 전 호수가 소금밭이다. 소금을 긁어내니 진흙이 나오고 그 아래 물이 고여 있는 희안한 곳이다.
다시 3시간여를 달리니, 터키의 수도로서 400만 인구의 "앙카라"에 도착하였다. 앙카라는 1923년 독립과 더불어 ‘무스타파 케말’에 의해 종래의 이스탄불을 탈피하여 새로이 수도로 지정된 도시로서, 그당시 6만명의 도시가 지금의 현대식 도시로 발전하였다 한다. 도시에는 사람의 물결과 자동차의 물결 그리고 경적소리와 소란스러움이 서울을 연상케 하였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부부는 단체투어에서 벗어 나, 둘이서 베낭을 메고 시내로 나섰다. 투어 가이드가 있는 단체관광이 편하기는 하나 여행의 참맛을 느끼려면 현지인과 같이 호흡하는 대중교통이나 현지식을, 그리고 현지인을 만나 이야기하는 여행이 참 여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지고 간 "여행 가이드책"을 보면서 버스니 지하철을 타고 찾아 가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 유적지나 관광장소가 그대로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터키에서는 전국 곳곳에 "아타 튀르크" 가 붙는 동상이나 공원, 거리 이름들이 많다. 그만큼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를 숭배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아타 튀르크" (국부)라는 칭호와 함께 터키 유일의 성씨를 만들어 주었다 한다. 그런 그가 후사가 없기에 결국은 유일무이의 성씨가 되어 버렸다 한다. 그가 개혁을 단행한 것중 가장 잘 한 것은 어려운 "아라비아"글자를 버리고 "라틴 문자"로 바꾸어, 문맹율을 60%에서 3%로 줄인 것이라 하는데 모든 국민들로부터 추앙을 받을만도 하다.
시내의 번잡한 곳에 나가보니 꼭 우리의 강남역 사거리와 같다. 인파에 인파가 그리고 자동차 물결이. 현지 식당에 들어 가 손짓으로 "케밥"을 시켜 길거리 탁자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하며 먹었다. 10년전에 개통된 지하철을 타고 "박물관"을 찾아 가다 너무 산꼭대기에 있어 포기하고, 근처 서민시장에 가서 과일을 사서 먹었다. 또 가다가 다리 아프면 카페에 들어 가 "짜이"라는 터키 차를 마신다. 이곳 사람들은 하루에도 짜이를 10잔이상 마신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담배를 연신 피워 대는데도 건강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 같다.
9월 13일 (화) - "임금님 귀는 당나귀 뒤", 전설 속의 이야기가 많은 나라 터키
어제 이곳 앙카라에 들어 올때에 교통혼잡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선지 오늘 아침 출발은 평소보다 이른 7시 30분이다. 2시간여를 달려, 옛 "프르기아" 왕국 (기원전 600년경) 의 수도인 "골디온"에 도착했다. 이곳은 골디온의 2대 왕인 그 유명한 "마이다스 대왕"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지름 300미터, 높이 60 미터인 고분에는 목관과 각종 부장품들이 들어 있었다. 마이다스왕의 일화는 여럿이 있다 한다. 그 중 하나는 마이다스왕이 손을 대는 무엇이든지 금으로 변하게 해 달라는 소원을 들어 주었는데 그만 음식마저 금으로 변해 배가 고파지자 다시 원래대로 해 달라고 빌었다는 이야기와, 다른 하나는 아폴로 신의 미움을 받아 당나귀 귀로 변하게 됐는데 이 비밀을 안 이발사가 참다 못해 들에 나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외친 것이 후에 풀이 자라면서 그 소리가 울려 퍼져 들켜버렸다는 바로 이야기 속의 왕이 마이다스다.
골디온을 지나 장장 4시간을 달리니, 서기 1300년경에 세워진 오스만 제국의 첫 수도였던 "부르사"에 도착하였다. 올림포스산 언덕에 자리 잡은 이곳은 옛 실크로드의 종착지였다 하며, 그래서 "실크"로 유명한 곳이라 한다. 옛 대상들의 숙소인 "캬라반 사라이"가 이제는 커다란 실크 상가로 변해 있었다.
우리 일행은 모두 31명인데 모두 각기 다르다. 국적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연령층도 다르다. 하루 종일 같이 다니다 보니 우리와 친하게 지내는 일행도 생겼다. 그중 "베로니카"라는 도미니카계 미국할머니는 여행중 당뇨로 고생하는 것을 내가 가지고 간 약을 논아 주어 원기를 회복해 우리만 보면 껴앉고 고맙다고 한다. "오드리"라는 이쁜 이름을 가진 호주할머니는 우리가 말상대를 해주니 어디가든 우리만 따라 다니며 말을 거는데 할머니 발음이 전통적 영국식 발음이라 못 알아 듣는게 많다. 이를테면 "인어"라는 "머메이드"를 "무마드"로 발음하니 알아 들을수 있겠는가? 유적지마다 노트를 많이하며 뛰어 다니는 교수풍의 영국남자를 나는 "인디아나 죤스의 아버지 숀코넬리 교수"라 불렀고, 영국에서 혼자 온 폴란드처녀는 열심히 배꼽을 내놓고 다니고, 호주에서 온 스리랑카 부부는 언제나 점심에 맥주를 마시고 (이유를 물어 보니 환타와 값이 같아서라나), 미국에서 온 우리 연배의 부부는 그 부인이 항상 행복해 하고 웃음이 떠나지 않는 것이 꼭 우리 아내와 같다하여 같이 웃었다. 스코트랜드에서 온 거구의 아가씨, 카나다 칼가리에서 왔다는 똑 부러지는 아줌마등 모두 생각나는 관광 동창생들이다.
9월 14일 (수) - 바다위에 떠 있는 다리에서 멋진 야경을 보며 식사를 하다
부르사를 출발 야로바를 거쳐 페리를 40분간 타고 마르마라해를 건느고,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보스포로스 다리"를 건넜다. 10 여일만에 유럽 땅을 다시 밟은 것이다. 이스탄불에 오니 역시 이스탄불이다. 신시가지의 "도르마바흐체 궁전"의 위용과 특급호텔들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 이스탄불의 가장 번화가인 "탁심 광장"을 돌아 "갈라타 다리"를 건너 구시가지로 돌아 왔다.
점심을 또 케밥으로 먹고, 옛 로마시대의 경기장이었던 "히포드럼"에 가서 애급에서 가져 온 "오벨리스크"와 "뱀 기둥"을 보고, 디시 "블루 모스크"로 들어 갔다. 지금도 예배 장소로 쓰이는 이 거대한 회교사원은 첨탑이 6개인 총본산 사원으로(사원의 급수는 첨탑의 갯수로 치는데, 6개는 사우디와 여기 밖에 없다 함)에 높이 50미터의 대형 돔과 260개의 스테인드 글라스 그리고 2만장의 청색타일이 모자이크된 호화로운 곳이다. 천정의 아름다운 기하학적 무뉘를 오랜동안 쳐다 보고 있었더니 목이 다 뻣뻣해 진다.
이웃에 있는 "그랜드 바자르"는 4,000 여개의 가게가 밀집되어 있는 중근동에서 제일 큰 시장이란다. 각종 귀금속과 실크 그리고 카펫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아내는 터키석 반지와 목걸이를 샀는데, 부르는 값에 절반을 주고 샀는데도, 원가가 얼마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아 깎아 사고도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해가 진뤼, 선착장이 있는 "에미뇨뉴"로 걸어 내려가 바다 구경을 하였다. 고기잡이 배위에 연기가 가득하여 가까이 가보니 고등어를 구워 케밥으로 팔고 있었다. 신기하여 하나 사 먹어 보니 맛이 일품이었다. "세르키지"기차역은 그 유명한 런던을 출발하는 "오리엔트 특급"의 이스탄불 종착역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와 연관된 역이라 흥미를 끌었다.
"갈라타 다리"는 2층의 구조로 되어 있는데, 그 1층에는 고급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그 중에 바다 전망이 제일 좋은 곳을 찾아 오랜만에 고급스런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하기야 오늘이 환갑날 이브이니 그런대로 기분을 내게 되었다. 생선구이 정식을 시키고 맥주를 한잔 하면서 지나온 날을 돌이 켜 보며 새삼 감회에 젖었다. 계산서에 팁이 붙어 있길래( 팁은 별도로 없으나, 간혹 웨이터가 계산에 넣는데 안준다면 도로 빼줌) No 라고 했더니 그 대신 커피로 써비스를 해 애교로 받아 주었다.
9월 15일 (목) - 보스포러스 해협의 아름다운 석양에 흠뻑 젖다
오늘은 나의 생일, 아니 그보다 더한 환갑날이다. 아침 일찍 아내가 생일카드와 한국에서 정성껏 준비해 온 "울 목도리" 를 선물로 주니, 예상을 못한터라 가슴이 찐하다. 우리 남편이 사울에서 바울로 변하게 되는 계기가 되도록 해 달라는 아내의 간절한 기도에 숙연해 진다.
아침 일찍 서둘러 "아야소피아 박물관"으로 갔다. 이른 아침임에도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입장료 또한 만만치 않아, 15 터키리라 (우리돈 12,000원) 를 받고 있어 그 입장수입만도 만만치 않겠다. 로마 지배를 받은 덕(?)에 후손들이 이렇게 먹고 살게 되었으니 로마 지배를 잘 받은 건지. 본래는 아야소피아 "성당"으로서 당대의 최고 건축기술로 지은 그리스정교회의 총본산이었는데 오스만왕조가 “회교사원”으로 개조해 사용했던 기구한 성당이다. 예수 생애를 담은 훌륭한 모자이크 성화가 회칠로 가려지고 내부 벽도 타일을 깔고 곳곳에 회교문구를 써넣어 많이 훼손이 됐던 곳으로, 미국인 조사단에 의거 덧칠을 벗겨내는 작업 끝에 소중한 성화 모자이크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스람 교도가 99%인 이곳에서 다시 사원으로 쓸만도 한데, ‘아타 튀르크’에 의해 박물관으로 일반에게 공개하기로 하였다니 과연 현명한 판단이 아니겠는가?
다음으로 "지하 물 저장고"로 갔다. 평범한 건물의 지하를 몇발짝 내려가니 냉기가 돌며 거대한 석조 물저장고가 나타난다. 어두운 가운데 교교한 빛을 내며 세로 140 미터 가로 70 미터 넓이의 석조 물탱크는 300 여개의 돌기둥으로 받쳐저 있었다. 그 옛날 수도교를 통해 물을 끌여 들여 왕궁의 식수원으로 사용된 듯하다. 맨 구석에는 메두사의 머리 두개가, 하나는 옆으로 또 하나는 거꾸로 기둥 하단에 놓여 있었는데, 누구나 그 것을 보면 돌로 변한다는 전설이 있어 아마도 물저장고를 지키는 파수꾼 노릇을 한게 아닌가 생각된다.
점심을 먹고, 에미뇨뉴 3번 선착장으로 가서, "보스포러스 크루즈" 배를 탔다. 유럽과 아시아를 구분짓는 이 30 km 길이의 해협(넓은 곳은 3 km 좁은곳은 600 m) 을 페리를 타고 끝까지 가면 거기가 흑해 입구가 된다. 배안에서 보는 보스포러스 대교는 멋진 사장교로서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연상케 했다. 푸른 바다에 흰 갈매기 떼, 그리고 살랑거리는 미풍과 돌아 오는 길에 만난 저녁 노을등은 마치 내 환갑 날의 자연의 선물인듯 싶다. 석양의 고운 노을처럼 내 노후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오랜동안 쳐다 보았다.
돌아 오는 중간에 페리에서 내린 곳이 "탁심"이라는 이스탄불 신시가지의 도심지였다. 번화한 거리로 사람들이 물밀듯이 걸어 가는데 보니 모두 유니폼차림이다. 축구에 열광하는 이곳 터키국민들이다. 이곳 이스탄불 홈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라 난리를 치면서 응원을 하러 간단다. (밤에 TV 를 보니 그 열광에도 1대 0으로 졌다) 탁심거리는 정말로 젊은이들의 홍수다. 간간이 관광객들이 섞여 있기는 해도 모두 현지 터키인들이다. 이스탄불 인구가 1000 만명이라는데 진짜 실감이 난다.
오늘로서 집을 떠난지 꼭 20일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한식을 한번도 찾지 않고, 싱가폴에서는 동남아 음식을, 두바이에서는 아랍음식을, 이곳 터키에서는 케밥을 줄기차게 먹어 가면서, 좀처럼 한국음식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않 들었다. 근대 오늘 처음으로 아내가 "뜨거운 국물"을 먹고 싶단다. 베트남 쌀국수와 같은. 그래서 찾다가 못 찾았지만. 이것도 아직 한국음식니 아닌 걸로 보아, 우리 부부 식성은 이제 완전히 이국화되었나 보다.
9월 16일 (금) – 이제는 터키를 떠나야 하니까 못내 아쉽고 다시 오고 싶구나
오늘로서 꼭 2주째 되는 날이다. 내일이면 정들었던 터키를 떠나야 한다. 그 동안 빠뜨렸던 곳을 보충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스탄불의 꽃인 “국립 고고학 박물관”으로 갔다. 기원전 5000 년전의 발굴품부터 로마, 비잔티움 그리고 오스만때까지의 전 고고품이 세대별로 잘 정리되어 있었고, 특히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은 탁월한 부조와 더불어 기원전 300 년전의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생생한 전투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노면전차와 돌무쉬를 갈아타고 물어물어 “카리에 박물관”을 찾아 갔다. 그곳은 5세기때의 수도원이었던 것을 오스만왕조때 사원으로 쓰던 곳이라던데, 그곳에 원래 있던 예수와 관련된 50여점의 성화 모자이크를 덧칠했던 것을 다시 벗겨 내니, 그 예술성과 경건함이 비잔틴 예술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한다. 천정과 벽면을 올려다 보는라 목이 다 뻣뻣해 진것 같다.
“탁심”을 마지막 관광 장소로 제안한 것은 물론 아내다. 어제와 같은 인파의 홍수속에서 사람구경하는 것이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단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터키 남자 모두가 희랍의 조각상처럼 눈이 움푹 패이고 검은 숫의 눈썹과 머리칼, 그리고 미끈한 몸매가 전부 영화배우같단다. 내 눈에도 모두 “제임스 딘”처럼 보인다. 그와 동시에 터키 여자들도 모두 빼어난 서구 미녀로서 금발을 펄럭이며 8등신 미녀라는데 아내와 의견을 같이 했다.
터키에 와서 우리는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볼만한 유적지를 빼놓지 않고 모두 구경을 했고, 그네들의 음식인 케밥과 요구르트 (터키가 원산지라 함)와 세계에서 제일 맛있다는 바켓트빵으로 위를 즐겁게 해 주었고, 현지인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반달을 보내고, 막상 내일이면 떠난다 하니, 정말로 서운한 마음이 들며 더 있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한편 무질서한 차량들과 사람들의 홍수속에 느닷없이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소리, 그리고 하루에 다섯번씩 예고없이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는 기도시간을 알리는 독경소리, 길거리의 호객꾼과 거지들. 이런 것들이 신경을 건드리기 시작하니 불현듯 이제는 터키를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